[치과경영]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태도에 미치는 영향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치과경영]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태도에 미치는 영향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 덴탈iN 기자
  • 승인 2023.08.02 14:35
  • 호수 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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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개념이 새로운 용도나 의미로 변할 때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집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등 그러나 이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는 이보다 훨씬 혁명적이다.

마치 종교 개종처럼 기존의 인식틀을 완전히 엎어버리고 전에 믿었던 것들을 부정하는 수준은 돼야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서양의 천체관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이룩한 업적 위에 1000년 이상을 굳건히 버텼다. 그의 논리는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이 움직인다는 천동설을 설명하는데 아주 완벽한 근거로 사용됐다.

하지만 천동설에 맞춰 모든 행성의 운행을 설명하려다 보니 주전원 운동(지구를 중심으로 원 운동을 하는 행성이 작은 원을 동시에 그리며 움직인다는 이론)과 같은 깔끔하지 않은 개념들이 도입됐고 점점 억지스러운 끼워 맞추기 식 설명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결국 기존의 천동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하고 천체의 운행 원리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지동설’(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는 이론)이 태동한다. 이 지동설을 인류가 받아들이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많은 희생이 따랐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지동설을 자신 있게 주장하지 못했다.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에서 목숨만 건지고 철학자 브루노는 화형을 당한다. 인류가 아직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중심이 지구라고 믿었던 천동설. 지구는 사실 우주의 변방에 놓인 작은 행성에 불과하다는 지동설. 결과적으로 지동설이 세상에 받아들여지면서 천동설은 완전히 폐기된다. 더 이상 천동설로는 하늘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없게 됐다.

 

20세기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의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에선 이를 공약 불가능성이라 표현한다. 이는 과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이다.

똑같은 대상(방금 예시에선 지구에서 관찰하는 하늘)에 대한 두 개 이상의 이론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으면서 그 이전과 이후에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됨을 의미한다.

즉 지동설을 받아들이게 되면 천동설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이 변한 이후 이제 사람들은 지구에서 관찰되는 천체들의 이동경로를 바라보면서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태양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관찰한 천동설을 믿는 사람은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한 바퀴 돌고 있다고 해석하지만, 지동설을 믿는 사람은 태양을 중심으로 우리 지구가 열심히 회전하고 있다고 해석하게 된다.

즉 그 사람이 믿고 있는 과학적 이론, 인식(패러다임)에 따라, 같은 현상을 관찰하더라도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과학자들이 분노하는 지점이 발생한다. 쿤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자들 또한 기존의 자연현상을 훨씬 더 깔끔하게 설명해 주는 새롭고 합리적인 이론이 등장하더라도 처음에는 무조건 믿지 않고 일단 부정한다는 것이다.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론적 패러다임 안에서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다가 시간이 흘러 기존의 패러다임을 믿던 과학자들의 세력이 약해지면 그때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던 신진 과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받아들여진다고 주장한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과학적 패러다임을 수호하려는 태도가 마치 종교적 태도와 비슷하다는 얘기다.

 

양자의 불확정성 원리(양자의 위치는 관찰할 때까지는 결정돼 있지 않다가 관찰자가 관찰했을 때 위치가 결정된다는 확률 원리)를 죽을 때까지 믿지 않았던 아인슈타인과 이를 주장하며 등장한 당시 신진과학자들의 사례를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끝까지 부정했던 양자역학의 내용들이 지금은 현대물리학의 이론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 또한 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쿤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의 주장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내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믿어온 세상의 원리, 이치들이 과연 정말로 당연한 걸까?

예를 들어 우리는 단 한 번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직접 관찰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둥글다고 믿고 있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교육받았고, 들어왔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그 경험적 사실이 나의 패러다임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중세 시대에 맹목적으로 천동설을 믿던 사람들과 비슷해 보인다.

 

최근에 지구 평면설(Flat Earth)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사이비 종교 집단을 대하는 그것과 비슷하다. 분명 현 시대 기준으로 괴상한 주장인건 분명하며 필자 또한 지구가 둥글다 믿는다.

 

그러나 과학적 태도를 견지한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먼저 물어보고, 이유를 들어본 다음에 비판해도 늦지 않다. 단지 그런 주장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은 채 광인 취급하는 건 과학적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지구가 둥글다’, ‘편평하다는 사실관계에 대한 논박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믿음에 반하는 주장에 대해 나도 모르게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프레임을 먼저 씌워놓고 판단하는 것. 이러한 태도 자체를 스스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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