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협 ‘100년 역사’의 뿌리는 ‘조선치과의사회’ vs ‘한성치과의사회’
치협 ‘100년 역사’의 뿌리는 ‘조선치과의사회’ vs ‘한성치과의사회’
  • 이가영 기자
  • 승인 2020.11.05 10:57
  • 호수 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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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협 창립일에 관한 공청회서 ‘끝장 토론’
1921년’ vs ‘1925년’ 치열한 토론
이상훈 회장 “어떤 방식으로든 의견 하나로 모아야”

지난 19814월 경주에서 열린 제30차 대한치과의사협회 정기대의원총회에서는 서울지부와 군진지부가 상정한 일반의안 제16, 대한치과의사협회 창립기념일 제정안에 대해 만장일치로 1921년을 창립기원으로 의결했다.

이후 구체적인 창립일은 집행부에 위임해 최종적으로 1921102일 조선치과의사회 창립일을 협회의 창립일로 결정했다.

그러나 조선치과의사회는 일본인을 주축으로 설립된 학회이며, 한국인 치과의사의 활동이 미비했던 점을 근거로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1회 졸업생을 주축으로 설립된 한성치과의사회의 창립을 협회의 역사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이러한 가운데 대한치과의사협회(회장 이상훈, 이하 치협)는 지난달 31일 치과의사회관에서 치협 창립일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최근 치과계에서 공론화돼 온 치협 창립기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그 해법을 찾기 위한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장재완 부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변영남 전 협회사편찬위원회 위원장과 권훈 협회사편찬위원회 위원이 패널로 나서 30차 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의결된 1921102일을 창립일로 정해야 한다‘1925415일 한성치과의사회 창립일로 해야 한다등 두 가지 사안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진행했다.

창립기념일 그대로 유지해야

먼저 변영남 전 위원장은 조선치과의사회는 1921년 한반도에 최초로 생긴 전국단위 치과의사 단체이며, 많지는 않지만 한국인 치과의사도 참여했다는 기록과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인이 만든 단체이므로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그러한 논리라면 서울치대는 1922년 설립된 경성치과 의학교에 연원을 두고 있다나기라다츠미 박사가 조선인의 전문직 양성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설립한 이 학교는 이후 1930년 경성치과 의학전문학교로 승격되고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으로 이어진다고 반박했다.

또 조선인 치과의사의 활동이 배제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함석태 선생을 비롯해 한동찬, 김창규, 이희창 선생 등이 조선치과의사회에서 활동했고 이후 활동하는 조선치과의사 수가 늘어났으며 임원으로도 참가했다면서 함석태 선생이 활동한 내용을 보면 소학교, 중학교 구강 검진 및 구강 보건교육에 참여했다는 활동이 있다. 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과연 혼자서 활동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1925년 창립된 한국인만의 한성치과의사회는 경성치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1회 졸업생들이 설립한 친목단체라며 정확한 창립일에 대한 기록도 없을뿐더러 전국단위의 치과의사 단체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변 전 위원장은 나기라다츠미는 해방되자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박명진 학장에게 남산에 있는 학교 관사를 인계하고 떠났고 그것이 현 협회 회관의 종잣돈이 된 것이다. 나기라다츠미의 업적을 높이 기려야 한다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반일감정, 적폐청산 등의 문제로 연결지어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한성치과의사회가 치협의 뿌리

권훈 위원은 조선치과의사회의 연혁 및 연도별 신문기사 등의 자료를 제시하며 조선인 치과의사들이 임원으로 합류한 기록은 1930년 처음으로 등장하며, 이전에는 어떠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면서 다만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만 남아 있을 뿐이다. 역사는 추측이 아닌 기록을 가지고 이를 토대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추론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193212월 말 조선치과의사 통계를 살펴보면 총 557명의 치과의사 중 조선인은 150명에 불과하며 일본인은 404명으로 기록돼 있다치협의 전신으로 인정 받으려면 최소 협회 임원의 1/3 이상은 조선인 치과의사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권 위원은 타 협회 및 타 국가 치과의사협회의 기원을 비교자료로 제시하면서 대한의사협회의 경우 순수 한국의사들이 모여 설립한 치과의사회를 협회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면서 일본 식민지배를 받은 아시아 국가 중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자국민 치과의사가 초대 회장인 단체를 치과의사협회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치과계 의견 하나로 모아야

패널 발표 후 이어진 토론 및 질의응답에서도 치협 역사를 두고 청중 간 공방이 이어졌다.

한 청중은 일본제국주의 시기는 광기를 띈 야만적 일탈의 시대였으며, 개인과 사회는 철저히 갇혀 있었다일본인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단체를 우리의 창립일로 보는 것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또한 국가나 단체가 생일을 기념일로 지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창립 기념일에 대해 대의원총회에서 의결한 사항으로서는 기명거수를 통해 속전속결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비록 위반사항은 없으나 심도깊은 논의가 아닌 다소 빈약하고 가볍게 건립을 지정한 것이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반대로 한 청중은 조선치과 의사들이 일본에서 유학하거나 일본인이 세운 학교를 졸업해 일본인이 포함된 단체에 가입하는 것은 반민족적 행위에 해당하는가?”라며 반문했다.

또한 대한한의사협회의 경우 그 기원을 1952년으로 제정했다가 최근 의사총합소를 설립한 189810월로 연원을 올렸다. 역사는 대게 연원을 올리기 마련이며 내리는 법은 거의 없다는 의견과 “21년 최초로 조선에 치과의사회가 생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전의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 안에서 조선인 치과의사의 활동의 흔적과 노력을 찾아보는 것이 훨씬 소모적인 행위라는 의견도 뒤따랐다.

아울러 치협 창립일에 대해서는 일회성 토론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며 꾸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 앞서 이상훈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 공청회를 통해 치협 창립기원에 대한 활발하고 건전한 토론이 이뤄지길 바라며,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치협 창립기원에 대한 다양한 의견수렴의 장을 마련할 것이라며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토론과 의견수렴의 과정을 거쳐 이를 토대로 추후 창립기원에 대한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어떤 방식으로든 치과계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진다면 이를 중심으로 치과계가 하나로 나아가는 성숙한 모습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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